강유원의 책담화冊談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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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Aug 10, 2022
📖 왕의 두 신체: ⟪리처드 2세⟫ — 09
Wednesday Aug 10, 2022
Wednesday Aug 10, 2022
❧ 리처드 2세와 두 원리리처드 2세는 성별된 적법한 군주였으나 귀족들과의 쌍무계약을 부정해서는 안 되는 봉건 영주이기도 하였다. 그가 가지고 있어야만 할 이중적 정체성은 바로 이 두 가지였다. 헨리 볼링브루크는 적법한 왕위계승권을 가진 자가 아니었고, 누가 보아도 찬탈자였다.
“리처드 왕(볼링브루크에게) 사촌, 난 사촌의 아버지가 되기에는 너무 젊소,사촌은 내 상속자가 되기에 충분한 나이지만.사촌이 원하는 것을 내가 줄 것이오, 게다가 흔쾌히 말이오,왜냐면 우리는 힘센 자가 하라는 대로 해야 하거든.런던으로 가겠군, 사촌, 그렇지요?
볼링부르크예, 훌륭하신 저의 폐하.
리처드 왕그렇다면 내가 거부해선 안 되지.”(⟪리처드 2세⟫, 3.3.204-210)
❧ 리처드 2세와 헨리 볼링브루크엘리자베스는 1세는 분명 리처드 2세와 조금도 닮은 점이 없다. 말년의 그는 “우유부단한, 타성에 젖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선에서 게으름을 피우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왜 그는 “내가 리처드 2세다, 그대도 알고 있지 않은가?”라고 외쳤을까. 이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는 헨리 볼링브루크를 두려워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리고 헨리 볼링브루크는 스튜어트 왕조 이후의 영국에서 번성하게 될 인간형의 선례가 아니었을까?
스튜어트 왕조의 국왕들이 ‘왕의 두 신체’를 자각했음은 분명하다. 뒤늦게 절대적 군주정에 심취한 이 국왕들은 16,17세기가 형성해 온 전혀 새로운 시대의 징후들이 잉글랜드 혁명·내전을 거치면서 완전히 무르익은 뒤 자신들의 시대에 와서 터져나올 것임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절대적 군주정의 부재가 잉글랜드에게는 극심한 내전의 원인이었겠지만 그것은 전혀 다른 종류의 시대로 갈 수 있게 해주는 요소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Wednesday Jul 27, 2022
📖 왕의 두 신체: ⟪리처드 2세⟫ — 08
Wednesday Jul 27, 2022
Wednesday Jul 27, 2022
❧ 볼링브루크와 리처드, 빌라도와 그리스도의 유사성“이때에 그[볼링브루크]는 빌라도를 떠올리게 하는데,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고통을 주고 그분을 수많은 유대인 군중 앞에 끌고 가 “자, 여기 너희의 왕이 있다.”라고 말했고 유대인들은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시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빌라도는 손을 씻으며 “나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그들에게 우리 주님을 넘겨주었다. 헨리 공작이 한 일도 이와 아주 비슷해서, 그는 자신의 정당한 주군을 런던의 폭도들에게 넘겨주었다. 그들이 자신의 주군을 죽인다면 “나는 이 일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다.”라고 말하기 위함이었다.”
❧ 거울 장면이중 인격의 비극은 거울 장면에서 절정에 다다른다. 거울은 요술 거울 같고, 리처드는 함정에 빠져 궁지에 몰린 동화 속 마법사처럼 자신의 요술 때문에 옴짝달싹 못 하는 마법사 같다. 거울이 비추는 얼굴은 더 이상 리처드의 내면의 경험을 담지 못하고, 그의 외양은 더 이상 내면의 인간과 같지 않다.
“이 얼굴이 바로 그 얼굴인가,매일 자기 집 지붕 아래천 명의 하인을 거느리던? 이것이 바로 그 얼굴인가,태양과도 같이 보는 이를 눈 감게 하던?이것이 바로 그 얼굴인가, 그 숱한 어리석음을 묵인하고,마침내 노려보는 볼링브루크한테 기가 질려 버린?”(⟪리처드 2세⟫, 4.1.281-286)
❧ 찰스 1세와 ⟪리처드 2세⟫찰스 1세의 자서전으로 알려진 ⟪군주의 초상⟫(Eikon Basilike)의 일부 판본에는 “비참한 왕”(Majesty in Misery)이라고도 불리는 긴 애가가 실려 있는데, 찰스 1세가 썼다는 이 시에서 불운한 왕이 넌지시 언급하는 것이 왕의 두 신체임은 너무나도 명백하다.
“나의 권능으로 나의 왕위를 그들이 허물고,왕의 이름으로 왕에게서 왕관을 빼앗네.이렇게 금강석이 먼지에 부서지네.”
Wednesday Jul 13, 2022
📖 왕의 두 신체: ⟪리처드 2세⟫ — 07
Wednesday Jul 13, 2022
Wednesday Jul 13, 2022
❧ 웨스트민스터 장면(4막 1장)웨스트민스터에서 리처드는 자신의 왕위를 직접 정당화할 힘조차 없다. 다른 사람이 그를 대변하면서 신이 세운 국왕이라는 심상을 설명하게 될 텐데, 아주 적절하게도 그 사람은 주교다. 다가올 공포와 잉글랜드의 골고타에 대해 예언함으로써 성서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사람도 주교다.
“무질서, 공포, 두려움, 그리고 폭동이이곳에 거주할 것이고, 이 나라 영토는 불릴 것이오,골고다와 죽은 자 해골들의 벌판으로.”(⟪리처드 2세⟫, 4.1.142-144)
❧ 자신의 왕위를 무화하는 리처드신이 기름 부은 자이며 지워지지 않는 특성(character indelibilis)을 지닌 국왕에게는 누구도 감히 손댈 수 없었기 때문에, 국왕 리처드는 자기 왕위를 박탈하는 의례의 집전자가 된다. 그는 자신의 정치체로부터 위엄의 상징을 하나씩 박탈하고, 관객의 눈앞에 자신의 가련한 자연체를 내보인다.
“이제 날 잘 보시오 내가 어떻게 날 무화하는지.내가 이 무거운 것을 내 머리에서 벗어 주노라,[볼링브루크가 왕관을 받는다]그리고 다루기 힘든 이 왕홀을 내 손에서 벗어 주노라,[볼링브루크가 왕홀을 받는다]왕으로서 지배하던 긍지를 내 마음에서 벗어 주노라.내 자신의 눈물로 나는 성유를 씻어 내고,내 자신의 손으로 나는 내 왕관을 건네주고,내 자신의 혀로 나는 나의 성스러운 왕권을 부인하고,내 자신의 숨으로 방면하노라, 온갖 충성의 서약들을.온갖 광휘와 위엄을 결단코 나는 그만두노라.”(⟪리처드 2세⟫, 4.1.203-211)
Wednesday Jun 15, 2022
📖 왕의 두 신체: ⟪리처드 2세⟫ — 05
Wednesday Jun 15, 2022
Wednesday Jun 15, 2022
❧ 왕의 다양한 “이중성들”⟪리처드 2세⟫의 중추를 이루는 세 개의 복잡한 장면들, 즉 웨일스 해안 장면(3.2), 플린트 성 장면(3.3), 웨스트민스터 장면(4.1), 각각에서 ‘왕’, ‘광대’, ‘신’으로 나타나는 리처드 2세의 인격들은 왕위의 거룩함으로부터 왕이라는 ‘이름’으로, 또 이름으로부터 적나라한 인간의 비참함으로 이어지는 일종의 점강법을 담고 있다.
❧ 의제(fiction)의 붕괴“그리고 비웃지 마시게, 살과 피를장엄한 존경으로. 집어치우라 존경이니,전통이니, 격식이니, 그리고 딱딱한 의전 따위, 당신들은 그동안 내내 날 오해한 거거든.나도 빵을 먹고 살지, 당신들처럼, 결핍을 느끼고,슬픔을 맛보고, 친구가 필요하다구. 이렇게 필요의 신하이건만,어떻게 당신들이 나더러 왕이라 할 수 있는가?” (⟪리처드 2세⟫, 3.2.171 이하)
Wednesday Jun 01, 2022
📖 왕의 두 신체: ⟪리처드 2세⟫ — 04
Wednesday Jun 01, 2022
Wednesday Jun 01, 2022
❧ ‘왕의 두 신체’라는 법률적 의제擬制(legal fiction)왕은 “그 자체로 불멸하는 몸체”라는 명제는 존 코웰John Cowell 박사가 펴낸 것과 같은 평이한 법률 용어 사전에 흔히 등장했고, 그보다 앞선 시기에도 플로우든Edmund Plowden의 ⟪보고서⟫가 제시한 왕권 개념이 조지프 키친Joseph Kitchin의 저작이나 리처드 크롬턴의 저작에 나타났다. 셰익스피어가 플로우든의 ⟪보고서⟫를 알고 있었다는 추측 또한 그럴듯하다.
❧ ‘왕의 두 신체’와 셰익스피어‘왕의 두 신체’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아주 생생하고 인간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은 사실상 셰익스피어 때문이다. 이 은유에 영원한 생명을 불어넣은 사람이 바로 셰익스피어다. 그에게 이 은유는 하나의 상징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쓴 가장 위대한 희곡들 중의 하나에서 본질이자 정수였다.
❧ ⟪헨리 5세⟫와 리처드 2세“오늘은 제발, 오 주님,오 오늘은 제발, 생각치 말아 주소서 제 아비가 왕관을 빼앗으면서 저질렀던 잘못을. 제가 리처드의 시신을 새로 묻었고, 그 위로 흘린 뉘우침의 눈물은 더 많습니다,그 몸에서 강제로 쏟아진 핏방울보다 더.”(⟪헨리 5세⟫, 4.1.312-317)
* 참고할 책들- Panofsky, Erwin., Early Netherlandish Painting, Its Origins and Character, Harvard Univ. Press, 1953.
Wednesday May 18, 2022
📖 왕의 두 신체: ⟪리처드 2세⟫ — 03
Wednesday May 18, 2022
Wednesday May 18, 2022
❧ 정치학과 신학의 상호 이행토마스 이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적 정치학을 수용하여 “은총이 정치학을 폐기하지 않고 완성”(gratia non tollit scientiam politicam sed perficit)하는 경지를 창출하였다. 토마스 이후 단테(1265-1321)는 군주가 신으로부터 직접 권위를 받는다고 하는 세속의 정치신학을 전개한다. 그에 따르면 “황제는 영적이고 현세적인 모든 것을 주관하는 그분에 의해서만 세워진 것이다.”(cui ab Illo solo prefectus est, qui est omnium spiritualium et temporalium gubernator.)
❧ 신정적神政的 정부론잉글랜드 플랜태저넷 왕조의 첫번째 왕인 헨리 2세(재위 1154-1189) 시기에 쓰여진 ⟪재무관에 관한 대화⟫에 따르면 “누구도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평화와 공공의 선을 위해 제정된 군주의 법률을 철회할 수는 없었다. 구체적인 현실 상황 하에서 ‘평화과 공공 선’이 무엇인지를 판별하는 인물은 오직 군주였다.”
❧ ⟪헨리 5세⟫“위대함과 쌍둥이로 태어나, 휘둘리기는 온갖 바보들,감각이라고는 고통의 그것 밖에 없는 그들의 구설에 휘둘리니, 얼마나 숱한 마음의 안식을 왕은 멀리해야 하는가 사병도 누리는 그것을...어떤 종류의 신이기에, 너는 인간의 슬픔으로고통받는가, 너를 숭배하는 자들보다 더?”(⟪헨리 5세⟫, 4.1.254-262)
* 참고할 책들- 에우세비오스, ⟪교회사⟫- 단테 알리기에리, ⟪제정론⟫ - 김경현,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기독교⟫
Wednesday May 04, 2022
📖 왕의 두 신체: ⟪리처드 2세⟫ — 02
Wednesday May 04, 2022
Wednesday May 04, 2022
❧ 필멸의 왕: king; 불멸의 왕: KING에른스트 칸토로비츠Ernst Hartwig Kantorowicz의 The King's Two Bodies: A Study in Mediaeval Political Theology(1957. A New Preface, William Chester Jordan, Princeton UP, 1997, 왕의 두 신체: 중세 정치신학 연구)는 제목 그대로 국왕에게 두 개의 몸이 있다는 테제를 제시한다. 몸들 중에서 하나는 왕이 가진 생물학적인 몸이다. 이 몸은 다른 인간의 몸과 마찬가지로 죽음에 이르면 소멸한다. 반면에 다른 몸은 불멸하는 영적인 것으로 여기에는 신민을 통치하는 신성한 권한이 담겨있다.
❧ 교황 레오 1세의 수장권론 대교황 레오 1세(Leo I Magnus, 재위 440–461)의 설명에 따르면 교황은 그리스도가 성 베드로에게 부여한 권한 기능의 법률적 후계자이다. 이는 베드로직의 기능과 권한의 연속성을 토대로 하되, 후임자 교황들이 성 베드로에게 물려받는 것은 그리스도가 성베드로에게 부여한 직책일 뿐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를 레오 1세는 ‘성 베드로의 보잘것없는 상속자’(indignus haeres beati Petri)라는 술어로써 집약하였다.
* 참고할 책들- 발터 울만, ⟪중세 정치 사상⟫
Wednesday Jun 29, 2022
📖 왕의 두 신체: ⟪리처드 2세⟫ — 06
Wednesday Jun 29, 2022
Wednesday Jun 29, 2022
❧ 플린트 성 장면(3막 3장)리처드는 더 이상 나라와 자기 신하들로 이루어진 신비로운 몸을 체현하지 않는다. 한때 왕이었던 왕은 이제 비참한 필멸자의 본성을 드러내는 외로운 인간이다.
“나의 보석을 묵주 한 세트와 바꿀 것이다, 호화로운 나의 궁궐을 은둔 암자와, 화사한 나의 의상을 거지 겉옷과,도안 새겨진 나의 잔을 나무 접시와,나의 왕홀을 순례자 지팡이와,나의 신하를 한 쌍의 성인 조각상과,그리고 거대한 나의 왕국을 작은 무덤과,작고, 작은 무덤, 이름 모를 무덤과 바꾸리라.” (⟪리처드 2세⟫, 3.3.147-154)
❧ 왕을 연기하는 광대이자 광대를 연기하는 왕“공명정대한 나의 사촌, 그 위풍당당한 무릎을 비천하게 하시는구려, 비천한 대지가 그것과 입 맞추며 방자해지게 만들다니 말요...일어나세요, 사촌, 벌떡. 사촌의 마음은 일어나 있어, 내가 알지,최소한 (자신의 머리를 건드리며) 이 왕관 높이는 될걸, 비록 사촌이 낮게 무릎을 꿇고 있을망정.”(⟪리처드 2세⟫, 3.3.190-195)
* 참고할 도상- ‘콘스탄티누스 1세와 무적의 태양신(Sol Invictus)’이 새겨진 주화.
Wednesday Apr 20, 2022
📖 왕의 두 신체: ⟪리처드 2세⟫ — 01
Wednesday Apr 20, 2022
Wednesday Apr 20, 2022
❧ 셰익스피어의 사극들셰익스피어(1564-1616)의 시대, 즉 1590년대 잉글랜드에서는 리처드 2세의 폐위와 이후 발발한 전쟁기간(장미전쟁, Wars of Roses, 1455-1485)이 큰 흥미를 끌었다. 셰익스피어가 이 시대를 자신의 사극의 소재로 삼은 까닭은 무엇일까. 셰익스피어의 비극들이 시대에서 소재를 취하고 그것을 반영하였다는 것이 타당하다면(☛ ’비극과 시대: ⟪햄릿⟫’) 사극은 더이상의 논변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시대를 반영한다.
❧ ⟪리처드 2세⟫와 엘리자베스 1세, 찰스 1세, 찰스 2세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 ⟪리처드 2세⟫는 정치적인 작품으로 여겨졌다. 셰익스피어 시대 사람들은 엘리자베스 1세와 에식스 백작의 대립이 ⟪리처드 2세⟫에 등장하는 리처드와 볼링브루크의 대립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복고된 왕정의 찰스 2세(재위 1660-1685)는 이 작품이 아주 강력한 왕권신수설의 옹호자였던 자신의 아버지 찰스 1세(재위 1625-1649)의 처형을 노골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이유로 상연하지 못하게 하였다.